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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가 필요없는 세상

voice-4414962_640음성인식 기술이 나온 지는 꽤 오래됐지만, 그동안 나는 한 번도 기계를 상대로 음성을 주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사용하진 않았다. 아직도 전화나 컴퓨터나 TV한테 말을 하는 게 좀 어색하기도 하고, 평소에 목을 많이 써서 그런지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치는 게 말하는 것보단 편하기도 하고, 아니면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음성인식 기술이 별로여서 똑같은걸 여러 번 반복해서 말했던 기억이 너무 많아서인지, 그냥 웬만하면 손가락을 사용했다.

그런데 최근에 음성으로 메모를 작성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거 보다 음성인식 기술이 빨리 발전하고 있고, 키보드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예상보다 빨리 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에 전자책을 읽을 때는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으면, 전자 하이라이트를 하고 클라우드에 저장했는데, 한 2년 전부터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오면서, 맘에 드는 부분을 핸드폰에 메모해 놓는 습관이 생겼다. 작은 핸드폰에 작은 키보드로 타이핑을 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오타를 계속 수정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얼마 전부터 그냥 음성으로 VTT(Voice to Text) 메모를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아서 상당히 만족해하고 있다. 한 4년 전만 해도 음성과 텍스트가 따로 놀아서, 똑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말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요샌 웬만하면 한번 말하고, 한 번 정도 손으로 글을 수정하면 모든 과정이 끝난다. 물론,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다.

사람들은 항상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단기적인 변화는 과대평가하고, 장기적인 변화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 애플이 Siri를 발표하고, 아마존이 Alexa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키보드가 없어지고, 기계가 사람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세상이 당장 올 것처럼 과대평가했지만, 나처럼 기술의 한계점에 부딪히면서 “역시 기계는 기계야”라는 생각을 하고, 음성인식에 대한 관심이 멀어졌다. 그런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갑자기 어느 순간 음성인식이 우리 생활 속으로 깊게 파고들어 온 것을 느끼면서 깜짝 놀랄 것이다. 마치 내가 요즘 그런 것처럼.

1868년에 타자기가 세상에 나온 이후로, 인류는 키보드를 통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직접 종이 위에 손으로 글씨를 썼다. 지금도 우리는 손으로 글을 쓰지만, 내가 지금 이 내용을 쓰는 것처럼 물리적인 키보드로 글을 쓰고, 터치스크린의 가상 키보드로 글을 쓰고, 음성으로도 글을 쓴다. 주위를 보면, 특히 어린 친구들은 음성인식 기술과 훨씬 친하고, 마치 친구들과 부모님과 대화하듯이 핸드폰, 리모컨, 스피커, 전자기기와 대화를 통해서 소통하고 있다. 이런 트렌드는 더 커질 것이다.

얼마 전에 페이스북이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CTRL-Labs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4년밖에 안 된 회사지만, 이 스타트업이 개발하고 있는 기술은 상당히 흥미롭다. 팔찌를 통해서 사용자의 뉴런 활동을 측정하고, 그리고 이를 통해서 이 사람의 생각을 가상 아바타로 전달하고, 사람의 생각대로 이 아바타를 움직이게 하는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다. 키보드가 필요 없고, 내 생각을 남한테 전달할 때 손가락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세상이 활짝 열리고 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홍보가 후진 제품을 살리지 않는다

내가 자주 강조하는 내용인데, 최근에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창업가와 해서, 몇 자 또 적어본다. 홍보에 관한 이야기다. 너무 좋은 제품과 기능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이런 게 있다는 걸 잘 모르니 홍보를 해야 하는데, 본인도 개발자고 다른 팀원도 개발자라서 홍보나 마케팅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홍보 담당자를 풀타임으로 채용하거나, 아니면 외주업체에 돈을 주고 PR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대표를 몇 분 만났다.

10년이면, 새로운 기술이 계속 나오는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한평생이고, 이 기간 동안 세상이 바뀐다. 그래서 내가 10년 전 이야기를 하는 건 정말 의미 없고, 어떻게 보면 꼰대스럽지만, 그래도 나는 본질이라는 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10년 전 미국에서 뮤직쉐이크 할 때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초기 뮤직쉐이크 제품은 PC 기반의 설치형 애플리케이션이었다. 그 이후에 플래시 기반의 웹 앱을 출시하고 – 당시 플래시 기술이 우리가 추구하는 기능을 다 지원하지 않아서 정말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폰이 나온 후에는 모바일 앱까지 출시했다. 모바일 앱은 단순히 음악을 쉽게 만드는 툴을 넘어서, 기존 유명곡을 재미있게 리믹스 할 수 있었는데, 음악에는 저작권이라는 골치 아픈 권리가 있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이야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오래된 명곡 Jackson 5의 “ABC” 리믹스 앱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모바일 앱을 출시했다.

위에서 말한 각 마일스톤을 도달할 때마다 우리 팀의 분위기는 흥분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참신한 도전이었고, 시장에 소문만 나기 시작하면, 이제 우린 떼돈 벌고 대박 터질 거라는 생각에 잠도 잘 못 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우리 예상과는 달리, 출시하고 시간이 한참 지나도 시장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다. 플래시 앱도 그랬고, 모바일 앱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내렸던 결론은, 너무 잘 만든 제품이지만 우리의 약한 홍보력으로 인해 시장이 아직 모르기 때문에 포텐이 터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대부분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홍보나 PR을 해주는 담당자가 없어서 외부 PR 회사와 계약하고 홍보와 PR을 아웃소싱하기 시작했다. 우리 담당 홍보 컨설턴트까지 배정이 됐다. LA 쪽에서는 신생 회사였지만, 꽤 잘하기로 소문났었기 때문에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홍보만 잘하면 대박 날 거라서 이 정도 비용은 충분히 지불할만하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모든 미디어에 뮤직쉐이크 관련 PR 활동을 했지만, 트래픽이나 매출에는 변화가 없었다. 몇 개월 동안 “이렇게 하면 되겠지” , “조금만 더 알려지면 될 거야” 등의 생각을 하면서 참 많은 시도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잘 안 됐다. 그리고 서서히 현실을 인지하게 됐다. 제품이 완벽하지 않으면 아무리 홍보를 많이 해도, 절대로 시장에서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우리가 후진 제품을 만든 건 아니다. 정말 참신하고 재미있었지만, 시장에서 제품을 보는 시선과 우리가 내부에서 봤던 시선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우리는 이걸 지속적인 제품 개발과 개선으로 풀어야 했는데, 홍보에서 찾으려고 하는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최근에 만난 많은 대표가 뮤직쉐이크 시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뭔가 잘 만든 거 같은데, 시장에서 반응이 없으니, 홍보로 해결하려고 하고, 내부에 홍보력이 없으니까 외부 마케팅/PR 에이전시에 비싼 돈 주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건 홍보의 문제가 아니라, 제품과 product-market fit의 문제이다. 고객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제품은 수백억 원을 써서 TV나 지하철 광고를 해도 말짱 헛거다. 일시적인 상승효과는 경험할 수 있겠지만, 돈을 쓰는 홍보를 멈추는 그 순간 트래픽과 매출은 곤두박질칠 것이다.

제품이 완벽해지기 전까지는 홍보와 마케팅에 너무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 제품이 좋으면, 알아서 고객이 알게 되고, 알아서 사용하게 된다. 요샌 모두가 바쁘고, 비슷한 제품도 너무 많아서, 홍보를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지만 – 그리고, 이건 과거에 비해서 일부 맞다고 생각한다 – 시대를 초월하는 절대불변의 본질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맛있는 식당은 안 알려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줄을 서고, 좋은 제품은 안 알려도 사용자들이 찾아서 사용하고, 돈을 쓰게 되어 있다.

Otis

나는 요새 미국보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 회사 내부,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미국 소식을 실시간으로 듣고, 읽고 있지만,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미국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감이 좀 많이 떨어져 있긴 하다. 그래서 만나는 많은 사람이 나한테, “요새 LA나 실리콘밸리 분위기는 어때요?” , “요새 미국에서 유행하는 게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나도 잘 모른다고 하는데,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투자해서 미국 소식도 자주 읽고, 앱스토 국가설정을 미국으로 바꿔서 한국에서는 찾기 힘든 참신한 앱을 설치하고 사용해 본다. 이 중 내가 요새 재미있게 사용하고 있는 Otis라는 앱이 있다. USV에서 투자한 회사고, Fred Wilson 때문에 알게 됐는데, 일종의 크라우드펀딩/특수목적 펀드/투자/collectible의 성격을 지닌 앱이다. 참고로, 미국 은행 계좌가 있어야 하고, 여러 가지 사전 체크리스트를 통해서 사용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한국에서는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Otis는 회사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일반적인 투자 상품 말고, 그림, 명품백, 운동화와 같은 소장 가치가 있는 상품 투자에 관심 있는 개인들을 위한 앱이다. 앱을 설치하고 회원 가입을 한 후, 은행 계좌가 인증되면 바로 투자를 시작할 수 있다.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마도 일반인들로부터 돈을 모아야 하는 플랫폼이라서 법적으로 승인받아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투자상품이 한 개 올라왔고, 그다음 상품에 투자하려면 기다려야 한다. 첫 번째 상품은 Kehinde Wiley라는 미국 현대 화가의 ‘St. Jerome Hearing the Trumpet of Last Judgment’라는 작품이었는데, 이 그림을 부분 소유하려면, 그림의 1주를 $25에 구매해야 한다. 나는 $250으로 이 그림의 10주를 구매해서, 전체 그림의(그림 가격 $237,500) 0.1%를 소유하고 있다. 이후 투자상품도 다양한데, 내가 부분 소유하길 기대하고 있는 건 Rolex 6265 Daytona 시계, 에르메스 벌킨 백, 2016년 나이키 Air Mag 등이 있다.

사진 2019. 9. 24. 오전 7 10 28

Otis는 이런 식으로 일반인들한테 돈을 모집한 후, 돈이 다 모이면 제품을 구매한다. 왜 투자자들은 이런 상품을 부분 소유하려고 할까? 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한정판이기 때문에 소장 가치가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그 가치는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마치 주식과도 비슷한데, 회사의 실적에 따라서 주가가 변동하는 기업 주식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냥 올라가는 장점이 있다. Otis는 적당한 시점에 다시 이 작품들을 판매하고, 판매한 후 원금과 수익금을 투자자들에게 배분한다. 두 번째는, 소장 가치가 있는 작품/상품들이기 때문에, 다양한 전시회에 상품을 대여해 줄 수 있다. 발생하는 대여료는 비례해서 투자자들에게 배분해준다. 세 번째는, 이런 소장 가치가 있는 상품을 온전히 다 구매하려면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 망설이거나, 구매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부분적으로 쪼개서 판매하니까 일반인도 부분 소유 할 수 있고, 매우 작지만 희귀템에 대한 오너십이 있다는 자부심 때문인 거 같다. 마치 내가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식을 한 개만 소유하고 있어도, “나는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주야”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거랑 일맥상통한다.

실은, 블록체인을 활용해서 이런 시도를 하는 업체도 몇 군데 있는 거 같은데, Otis라는 회사는 블록체인 없이 제대로 이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거 같고, 앞으로 어떤 상품들이 올라올지 기대가 된다. 한국도 혹시 이런 비즈니스를 하는 팀이 있으면, 한 번 만나보곤 싶다.

<이미지 출처 = Otis>

고객이 항상 옳을까?

창업가나 투자자한테 사업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물어보면, 다양한 의견과 답변이 오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건 ‘고객’일 것이다. 비즈니스를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경험 있는 사업가들도 아마도 수십 년 동안 사업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고객의 목소리를 무조건 잘 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나도 100% 동의한다. 아무리 좋은 기술, 좋은 제품, 좋은 서비스라도 시장에서 고객이 사용하지 않으면, 그건 좋은 기술도 아니고, 좋은 제품도 아니고, 좋은 서비스도 아니다. 그냥 시간 낭비, 돈 낭비 한 거다. 스타트업바이블이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책에서도 나는 “좋은 제품”의 정의는 시장에서 잘 팔리는 제품이라고 했고, 그만큼 고객의 목소리와 고객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스티브잡스와 같은 창업가는 반대 의견을 항상 강조하긴 했다. 잡스는 항상 고객은 본인이 뭘 원하는지 모르고, 고객은 멍청하기 때문에, 고객의 의견을 물어보거나 고객의 목소리를 들으면, 절대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강조하기로 유명했다.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고객을 가장 철저하게 무시했던 사업가는 스티브 잡스였던 거 같다. 실은 포드 자동차의 헨리 포드도 그 옛날에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포드가 한 말 중 이런 그의 생각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게 바로 이 말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에게 원하는 게 뭔지를 물어봤다면, 더 빠른 말을 원한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고객이 항상 옳을까? 고객의 목소리가 정말 중요할까? 나는 아직도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면, 절대로 사업이 망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잡스와 포드의 입장에서는 왜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이해는 간다. 만들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이미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이걸 조금 더 싸고, 빠르고, 좋게 만드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면, 고객의 목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말 그대로, 이미 존재하는 제품이지만, 이걸 더 싸고, 빠르고, 좋게 만들려면, 점진적인 발전과 수정이 필요한데, 이런 변화는 주로 수많은 사용자들의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에 이미 존재하는 제품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려고 창업한 많은 스타트업이 설문조사나 고객 인터뷰를 통해서 데이터를 수집한 후, 개발을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만드는 창업가는 잡스나 포드와 같이 고객의 목소리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고객의 목소리에 너무 집중하면, 세상을 바꿀만한 new new thing은 만들 수 없을 거 같다. 왜냐하면, 포드가 말했듯이, 존재하지 않는 제품이기 때문에 고객한테 물어보면, 그들은 본인들이 아는 범위 안에서만 생각하고, 그 범위 안에서만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물리적인 키보드를 없애고, 터치스크린으로 작동되는 아이폰을 만든다고 선언하고,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앞으로는 사람들이 폰으로 전화보다 이메일, 게임, 그리고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더 많이 할 거라고 했을 때, 노키아나 모토로라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고 비웃었다. 왜냐하면 노키아와 모토로라는 외부 컨설팅 업체를 통해서 광범위한 글로벌 고객 인터뷰를 했는데, 이 고객 중 그 누구도 터치스크린 폰이나 애플리케이션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언급하는 블랙스완의 성격을 지닌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면, 오히려 고객의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평범한 사고방식을 가진 일반 대중(=고객)에게서는 절대로 답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실은 이런 현실은 창업가들을 상당히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것인가, 아닌가? 완전히 무시할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까지 참고해야 하는가? 우리 투자사들도 이런 고민을 많이 하는데, 최근에 이 두 가지를 어느 정도 적당히 잘 혼합하는 대표와 이야기하다가 재미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이 회사는 1년 365일 고객의 목소리를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받고 있는데, 가장 많은 요청을 받는 기능은 그다음 업데이트에 가장 먼저 적용한다고 한다. 많은 고객이 원하는 기능이기 때문에, 점진적인 제품 개선을 위해 서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요청이 적은 내용에 대해서도 전사적으로 열띤 토론을 한다고 한다. 현실적으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이런 것들이 어쩌면 위에서 말 한, 블랙스완의 성격을 지닌, 회사의 운명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기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끔 이런 기능도 적용해보기도 한다고 한다.

무시하고, 비웃고, 싸우기, 그리고 이기기

culture-1292900_640마하트마 간디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았고, 수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이분의 삶과 투쟁을 가장 잘 요약한 말은 이 말인 거 같다:

“First they ignore you, then they laugh at you, then they fight you, then you win(처음엔 사람들이 당신을 무시할 것이고, 그다음엔 당신을 비웃을 것이고, 다음엔 당신과 싸울 것이고, 그러고 나서 당신은 이길 것이다)”

이 말의 뜻은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너무 잘 알 것인데, 창업을 생각하고 있거나,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라면, 잘 기억하고 명심하면 좋을 거 같다. 왜냐하면, 현재 이분들의 현실을 간디의 이 말이 거의 100% 그대로 보여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모르니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다가, 이걸 알게 되면 다들 잘 안 될 것이라고 비웃는다. 그런데 죽지 않고 잡초같이 잘 자라면, 그땐 너도나도 따라 하고, 돈 많으면 돈으로 누르려고 하고, 덩치가 크면 협박하고, 언론과 친하면 악성 루머를 퍼뜨리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싸우려고 한다. 여기서 무너지는 스타트업도 많지만, 잘 버티다가 결국엔 성공하는 회사와 창업가도 가끔 본다. 우리 투자사들도 모두 무시-비웃음-투쟁-승리, 이 4단계 중 어딘가에서 현재 고생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을 최근에 가장 잘 보여준 사례가 바로 식물성 단백질 제품이 아닐까 싶다.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가짜 고기’를 만드는 최근에 상장한 Beyond Meat와 아직은 비상장 회사지만 투자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Impossible Foods도 인제야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 시작은 매우 소박하고, 주류 동물성 단백질 회사들로부터 무시와 비웃음을 당했다. 아마도 육류회사들은 이런 대체 단백질 회사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처음에는 몰랐을 것이고, 참신하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조명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대중이 조금씩 알게 되자, “식물성 단백질”이라는 말 차제가 말이 안 된다고 무시했다. 2009년도에 LA에서 창업된 Beyond Meat는 2014년에 Beast Burger라는 정말 맛없는 식물성 햄버거 패티를 처음 출시하면서 앞으로 가축 도살을 완전히 종료시키겠다고 선언했는데, 미국축산협회 임원들은 미친 소리라면서 욕하고 비웃었던 게 생각난다.

하지만, 작고, 빠르고, lean 한 스타트업의 특성을 살려서 Beyond Meat는 계속 빠르게 실패하고, 테스트하고, 실행하면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실제 고기와 맛이 꽤 근접한 가짜 고기를 만드는 데 점점 성공에 가까워지고 있고, 그 힘든 여정에 Impossible Foods가 조인하면서, 계속 이 산업을 키우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가 움직이고, David Chang과 같은 유명한 쉐프도 움직이기 시작하자, 축산협회는 그제야 이게 생각보다 심각한 위협이 될 거라는 걸 감지했다. 처음에는 무시하고, 비웃었지만, 이제는 방해하고 싸우기 시작했다. 2019년도에 미국 30개 주의 공무원들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태어나고, 사육되고, 도살되지 않은 고기로부터 나오지 않은 단백질에 “고기, 버거, 소세지, 터키 또는 핫도그”라는 명칭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물론, 축산협회의 엄청난 로비가 있었을 것이다. 이 30개 주 중 7개 주는 이미 이 법안을 통과시켰고, 미주리에서는 식물성 단백질 제품에 “고기”라는 말을 사용하면, 벌금 100만 원 이상과 최대 1년 징역까지 살 수 있다.

이 싸움에서 과연 식물성 단백질 회사들이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축산협회는 너무나 경제적, 정치적으로 힘이 센 조직이라서 수백 년 동안 본인들한테 말 그대로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해 준 동물성 단백질 비즈니스가 타격받는 걸 가만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 최대 육류가공업체 Tyson Foods나 Smithfields Foods와 같은 회사는 양다리를 걸치면서, 오히려 본인들도 식물성 단백질 제품을 출시해서 조심스럽게 마케팅하고 판매를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실은, 식물성 단백질 산업뿐만 아니라, 그 어떤 산업이라도 기존에 없던 새로운 무엇인가가 등장을 하면, 기존 플레이어들과 항상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갈등이 생긴다. 당장 한국에서도 택시연합회와 타다가 이런 “무시, 비웃음, 싸움” 과정을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다윗과 골리앗이 싸우면, 실은 성경에서나 다윗이 이기지, 현실에서는 골리앗이 항상 이긴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아주 끈질기고 강인한 다윗이 등장해서 골리앗을 이기는 경우도 우린 경험한다. 지금은 무시당하고, 비웃음당하지만, 계속 버티면서 내 갈 길을 가다 보면, 어쩌면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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