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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의존도

mobile-phone-1917737_1280전에 어느 기관에서 발행한 보고서를 보니까, 전 세계 VC 투자금의 40%가 페이스북과 구글에 그대로 흘러 들어간다는 내용이 있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VC들이 스타트업에 자금을 투자하면,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서비스나 모바일앱을 마케팅하기 위해서 페이스북이나 구글에서 광고하는데, 이렇게 투자금이 고스란히 페이스북과 구글에 마케팅 예산으로 집행된다는 내용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너무 맞는 말이다. 우리 투자사들도 대부분 페이스북, 구글, 그리고 한국 회사는 네이버에서 마케팅하는데, 여기에 돈이 상당히 많이 집행된다.

이 글을 읽으면서, 페이스북과 구글이 정말로 엄청난 비즈니스 플랫폼을 만들었다고 생각했고, 우리도 이런 회사에 언젠가는 투자할 수 있겠지라는, 기대를 했다. 반면에, 스타트업이 목숨을 걸고 만들고 있는 제품을 시장에 마케팅하기 위해서 소수의 대형 플랫폼에 전면 의지하는 건 상당히 위험하다는 걱정도 했다.

실은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는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작은 스타트업이 수만, 수십만, 또는 수백만의 잠재 고객에게 아주 빠르고 쉽게 마케팅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그래서 내가 아는 모든 회사는 – 어떤 걸 하든 상관없다. 모든 회사가. – 마케팅의 기본으로 페이스북 기업 페이지를 만들고, 여기서부터 마케팅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플랫폼에서 제대로, 그리고 정말로 내가 원하는 고객한테 우리 회사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상당히 돈을 많이 써야 한다. 페이스북과 같은 대형 소셜 미디어는 회사와 잠재 고객을 연결하는 데 있어서 복잡한 알고리즘을 사용하긴 하지만, 그 밑에는 간단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되고, 돈을 쓰지 않으면 공급 자체를 제한해버린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오가닉 도달(organic reach)은 우리 회사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라이크하고 팔로우하는 사람들에게 콘텐츠를 전달하는 능력인데, 페이스북은 이 오가닉리치를 평균 5% 이하로 제한한다. 즉, 우리 회사 페이스북 페이지를 팔로우하는 사람이 5,000명 이고, 24시간 한정 특별 할인 이벤트를 포스팅하면, 이 할인 이벤트 내용은 팔로워 250명의 타임라인에만 노출된다는 의미다. 이 이상의 팔로워에게 노출하려면 돈을 내야 하는데, 너무 많은 회사가 비슷한 고객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경쟁하니까, 광고 단가가 계속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정말 작은 예산으로 마케팅을 하는데, 이런 회사에는 페이스북이 어쩌면 그렇게 좋은 마케팅 플랫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페이스북이 나쁜 마케팅 플랫폼이라는 말은 아니다. 비싸긴 하지만, 이렇게 많은 글로벌 잠재 고객들을 정교하게 타게팅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은 페이스북만 한 게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회사의 마케팅 전략이 100% 페이스북이나 구글에 의존하고 있다면, 마케팅 방법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정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검색, 소셜미디어, 블로그, 이메일, 찌라시, 전화 등과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마케팅 채널을 분산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가 항상 강조하지만, 최고의 마케팅은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제품 자체가 마케팅 전략이 될 것이고, 여기에다가 조금만 돈을 쓰면, 상당히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혁신에 대해서

내가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요새 어떤 분야가 뜨나요?” , “요새 스트롱은 어떤 분야에 투자하세요?”이다. 아마도 많은 VC가 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는 거로 알고 있다. 실제로 벤처투자자 중 그 시점에 가장 핫한 분야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다. 몇 년 전에 IoT로 인해 마치 모든 기계가 서로 소통하는 세상이 금방 올 것 같았던 때가 있다. 이때 하드웨어와 IoT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도 있었고, 이 분야에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서 관련된 회사를 쥐잡듯이 찾아서 만나는 VC도 많았다. 그 이후에는 VR, O2O, 블록체인 등등 내 기억으로는 해마다 한두 개의 핫한 분야가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있는 거 같다. 나도 투자를 시작할 때 이런 유행을 열심히 좇던 시절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화두가 되는 유행에 투자를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 분야에 있는 창업가는 누가 있는지를 조사해서 특정 분야의 회사를 전부 다 만났던 적도 있었던 거 같다. 뭐, 그래서 좋은 회사에 투자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새 누가 나한테 우린 어떤 분야를 보고 있냐고 물어보면, 그냥 특별하게 보는 분야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하게 안 보는 분야도 없다고 한다. 실은,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해보면, 오히려 남들이 별로 핫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야의 회사를 더 관심 갖고 본다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나는 세상을 갑자기 바꾸는 극단적인 혁신을 별로 안 믿는다. 지금도 당장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여러 기술과 과학은 연구되고 있고, 실험실이나 연구실에는 구현 가능한 기술이 여러 가지 존재한다. 하지만, 진짜 혁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런 기술이 제품화가 되고, 대량으로 만들어져서 우리 삶에 깊게 적용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정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간과 돈이 많이 투자되어도, 실현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위 말하는 점진적 혁신을 하는 기술이나 제품에 주로 투자한다. 이미 존재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많이도 아니고,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싸게 만드는 그런 스타트업들이다. 최근에 어떤 기사를 읽었는데, 이 기자는 토스, 배달의 민족, 타다, 미소 등과 같은 서비스가 무슨 혁신이냐면서 상당히 부정적인 톤으로 글을 썼다. 밑에 댓글들을 보면 역시나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기자가 병신이라는 내용의 댓글을 수없이 달았고, 스타트업이 아닌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자가 맞고, 이 기자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을 단 사람들이 병신이라는 댓글을 달았다(다른 이야기지만…한국의 댓글 싸움을 읽는 건 항상 흥미롭다). 나는 둘 다 나름 맞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이 기자는 혁신을 너무 과대평가했다고 생각한다. 실은 위에서 말한 토스, 배달의 민족, 타다와 같은 서비스는 한국인들이 대부분 매일 사용하는 서비스와 제품이기 때문에, 아주 조금만 바꿔서,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편하고, 조금 더 싸게 만들면 이게 엄청난 혁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혁신은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행하든 안 하든, 실리콘밸리에서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분야든 아니든, 정부에서’AI 펀드’ , ‘(핫한 분야)의 펀드’를 만들어서 이 분야에 투자하는 VC에 돈을 주든 안 주든, 어떤 VC들이 이미 유행이 지났다고 하는 분야와는 상관없이 모든 분야를 본다. 왜냐하면, 소수의 삶을 극적으로 바꿔주는 혁신보다는, 다수의 삶을 조금이라도 바꿔주는 혁신이 나한테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키보드가 필요없는 세상

voice-4414962_640음성인식 기술이 나온 지는 꽤 오래됐지만, 그동안 나는 한 번도 기계를 상대로 음성을 주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사용하진 않았다. 아직도 전화나 컴퓨터나 TV한테 말을 하는 게 좀 어색하기도 하고, 평소에 목을 많이 써서 그런지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치는 게 말하는 것보단 편하기도 하고, 아니면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음성인식 기술이 별로여서 똑같은걸 여러 번 반복해서 말했던 기억이 너무 많아서인지, 그냥 웬만하면 손가락을 사용했다.

그런데 최근에 음성으로 메모를 작성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거 보다 음성인식 기술이 빨리 발전하고 있고, 키보드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예상보다 빨리 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에 전자책을 읽을 때는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으면, 전자 하이라이트를 하고 클라우드에 저장했는데, 한 2년 전부터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오면서, 맘에 드는 부분을 핸드폰에 메모해 놓는 습관이 생겼다. 작은 핸드폰에 작은 키보드로 타이핑을 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오타를 계속 수정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얼마 전부터 그냥 음성으로 VTT(Voice to Text) 메모를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아서 상당히 만족해하고 있다. 한 4년 전만 해도 음성과 텍스트가 따로 놀아서, 똑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말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요샌 웬만하면 한번 말하고, 한 번 정도 손으로 글을 수정하면 모든 과정이 끝난다. 물론,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다.

사람들은 항상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단기적인 변화는 과대평가하고, 장기적인 변화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 애플이 Siri를 발표하고, 아마존이 Alexa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키보드가 없어지고, 기계가 사람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세상이 당장 올 것처럼 과대평가했지만, 나처럼 기술의 한계점에 부딪히면서 “역시 기계는 기계야”라는 생각을 하고, 음성인식에 대한 관심이 멀어졌다. 그런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갑자기 어느 순간 음성인식이 우리 생활 속으로 깊게 파고들어 온 것을 느끼면서 깜짝 놀랄 것이다. 마치 내가 요즘 그런 것처럼.

1868년에 타자기가 세상에 나온 이후로, 인류는 키보드를 통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직접 종이 위에 손으로 글씨를 썼다. 지금도 우리는 손으로 글을 쓰지만, 내가 지금 이 내용을 쓰는 것처럼 물리적인 키보드로 글을 쓰고, 터치스크린의 가상 키보드로 글을 쓰고, 음성으로도 글을 쓴다. 주위를 보면, 특히 어린 친구들은 음성인식 기술과 훨씬 친하고, 마치 친구들과 부모님과 대화하듯이 핸드폰, 리모컨, 스피커, 전자기기와 대화를 통해서 소통하고 있다. 이런 트렌드는 더 커질 것이다.

얼마 전에 페이스북이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CTRL-Labs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4년밖에 안 된 회사지만, 이 스타트업이 개발하고 있는 기술은 상당히 흥미롭다. 팔찌를 통해서 사용자의 뉴런 활동을 측정하고, 그리고 이를 통해서 이 사람의 생각을 가상 아바타로 전달하고, 사람의 생각대로 이 아바타를 움직이게 하는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다. 키보드가 필요 없고, 내 생각을 남한테 전달할 때 손가락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세상이 활짝 열리고 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홍보가 후진 제품을 살리지 않는다

내가 자주 강조하는 내용인데, 최근에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창업가와 해서, 몇 자 또 적어본다. 홍보에 관한 이야기다. 너무 좋은 제품과 기능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이런 게 있다는 걸 잘 모르니 홍보를 해야 하는데, 본인도 개발자고 다른 팀원도 개발자라서 홍보나 마케팅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홍보 담당자를 풀타임으로 채용하거나, 아니면 외주업체에 돈을 주고 PR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대표를 몇 분 만났다.

10년이면, 새로운 기술이 계속 나오는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한평생이고, 이 기간 동안 세상이 바뀐다. 그래서 내가 10년 전 이야기를 하는 건 정말 의미 없고, 어떻게 보면 꼰대스럽지만, 그래도 나는 본질이라는 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10년 전 미국에서 뮤직쉐이크 할 때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초기 뮤직쉐이크 제품은 PC 기반의 설치형 애플리케이션이었다. 그 이후에 플래시 기반의 웹 앱을 출시하고 – 당시 플래시 기술이 우리가 추구하는 기능을 다 지원하지 않아서 정말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폰이 나온 후에는 모바일 앱까지 출시했다. 모바일 앱은 단순히 음악을 쉽게 만드는 툴을 넘어서, 기존 유명곡을 재미있게 리믹스 할 수 있었는데, 음악에는 저작권이라는 골치 아픈 권리가 있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이야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오래된 명곡 Jackson 5의 “ABC” 리믹스 앱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모바일 앱을 출시했다.

위에서 말한 각 마일스톤을 도달할 때마다 우리 팀의 분위기는 흥분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참신한 도전이었고, 시장에 소문만 나기 시작하면, 이제 우린 떼돈 벌고 대박 터질 거라는 생각에 잠도 잘 못 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우리 예상과는 달리, 출시하고 시간이 한참 지나도 시장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다. 플래시 앱도 그랬고, 모바일 앱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내렸던 결론은, 너무 잘 만든 제품이지만 우리의 약한 홍보력으로 인해 시장이 아직 모르기 때문에 포텐이 터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대부분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홍보나 PR을 해주는 담당자가 없어서 외부 PR 회사와 계약하고 홍보와 PR을 아웃소싱하기 시작했다. 우리 담당 홍보 컨설턴트까지 배정이 됐다. LA 쪽에서는 신생 회사였지만, 꽤 잘하기로 소문났었기 때문에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홍보만 잘하면 대박 날 거라서 이 정도 비용은 충분히 지불할만하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모든 미디어에 뮤직쉐이크 관련 PR 활동을 했지만, 트래픽이나 매출에는 변화가 없었다. 몇 개월 동안 “이렇게 하면 되겠지” , “조금만 더 알려지면 될 거야” 등의 생각을 하면서 참 많은 시도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잘 안 됐다. 그리고 서서히 현실을 인지하게 됐다. 제품이 완벽하지 않으면 아무리 홍보를 많이 해도, 절대로 시장에서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우리가 후진 제품을 만든 건 아니다. 정말 참신하고 재미있었지만, 시장에서 제품을 보는 시선과 우리가 내부에서 봤던 시선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우리는 이걸 지속적인 제품 개발과 개선으로 풀어야 했는데, 홍보에서 찾으려고 하는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최근에 만난 많은 대표가 뮤직쉐이크 시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뭔가 잘 만든 거 같은데, 시장에서 반응이 없으니, 홍보로 해결하려고 하고, 내부에 홍보력이 없으니까 외부 마케팅/PR 에이전시에 비싼 돈 주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건 홍보의 문제가 아니라, 제품과 product-market fit의 문제이다. 고객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제품은 수백억 원을 써서 TV나 지하철 광고를 해도 말짱 헛거다. 일시적인 상승효과는 경험할 수 있겠지만, 돈을 쓰는 홍보를 멈추는 그 순간 트래픽과 매출은 곤두박질칠 것이다.

제품이 완벽해지기 전까지는 홍보와 마케팅에 너무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 제품이 좋으면, 알아서 고객이 알게 되고, 알아서 사용하게 된다. 요샌 모두가 바쁘고, 비슷한 제품도 너무 많아서, 홍보를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지만 – 그리고, 이건 과거에 비해서 일부 맞다고 생각한다 – 시대를 초월하는 절대불변의 본질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맛있는 식당은 안 알려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줄을 서고, 좋은 제품은 안 알려도 사용자들이 찾아서 사용하고, 돈을 쓰게 되어 있다.

Otis

나는 요새 미국보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 회사 내부,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미국 소식을 실시간으로 듣고, 읽고 있지만,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미국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감이 좀 많이 떨어져 있긴 하다. 그래서 만나는 많은 사람이 나한테, “요새 LA나 실리콘밸리 분위기는 어때요?” , “요새 미국에서 유행하는 게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나도 잘 모른다고 하는데,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투자해서 미국 소식도 자주 읽고, 앱스토 국가설정을 미국으로 바꿔서 한국에서는 찾기 힘든 참신한 앱을 설치하고 사용해 본다. 이 중 내가 요새 재미있게 사용하고 있는 Otis라는 앱이 있다. USV에서 투자한 회사고, Fred Wilson 때문에 알게 됐는데, 일종의 크라우드펀딩/특수목적 펀드/투자/collectible의 성격을 지닌 앱이다. 참고로, 미국 은행 계좌가 있어야 하고, 여러 가지 사전 체크리스트를 통해서 사용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한국에서는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Otis는 회사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일반적인 투자 상품 말고, 그림, 명품백, 운동화와 같은 소장 가치가 있는 상품 투자에 관심 있는 개인들을 위한 앱이다. 앱을 설치하고 회원 가입을 한 후, 은행 계좌가 인증되면 바로 투자를 시작할 수 있다.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마도 일반인들로부터 돈을 모아야 하는 플랫폼이라서 법적으로 승인받아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투자상품이 한 개 올라왔고, 그다음 상품에 투자하려면 기다려야 한다. 첫 번째 상품은 Kehinde Wiley라는 미국 현대 화가의 ‘St. Jerome Hearing the Trumpet of Last Judgment’라는 작품이었는데, 이 그림을 부분 소유하려면, 그림의 1주를 $25에 구매해야 한다. 나는 $250으로 이 그림의 10주를 구매해서, 전체 그림의(그림 가격 $237,500) 0.1%를 소유하고 있다. 이후 투자상품도 다양한데, 내가 부분 소유하길 기대하고 있는 건 Rolex 6265 Daytona 시계, 에르메스 벌킨 백, 2016년 나이키 Air Mag 등이 있다.

사진 2019. 9. 24. 오전 7 10 28

Otis는 이런 식으로 일반인들한테 돈을 모집한 후, 돈이 다 모이면 제품을 구매한다. 왜 투자자들은 이런 상품을 부분 소유하려고 할까? 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한정판이기 때문에 소장 가치가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그 가치는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마치 주식과도 비슷한데, 회사의 실적에 따라서 주가가 변동하는 기업 주식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냥 올라가는 장점이 있다. Otis는 적당한 시점에 다시 이 작품들을 판매하고, 판매한 후 원금과 수익금을 투자자들에게 배분한다. 두 번째는, 소장 가치가 있는 작품/상품들이기 때문에, 다양한 전시회에 상품을 대여해 줄 수 있다. 발생하는 대여료는 비례해서 투자자들에게 배분해준다. 세 번째는, 이런 소장 가치가 있는 상품을 온전히 다 구매하려면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 망설이거나, 구매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부분적으로 쪼개서 판매하니까 일반인도 부분 소유 할 수 있고, 매우 작지만 희귀템에 대한 오너십이 있다는 자부심 때문인 거 같다. 마치 내가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식을 한 개만 소유하고 있어도, “나는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주야”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거랑 일맥상통한다.

실은, 블록체인을 활용해서 이런 시도를 하는 업체도 몇 군데 있는 거 같은데, Otis라는 회사는 블록체인 없이 제대로 이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거 같고, 앞으로 어떤 상품들이 올라올지 기대가 된다. 한국도 혹시 이런 비즈니스를 하는 팀이 있으면, 한 번 만나보곤 싶다.

<이미지 출처 = Ot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