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소프트웨어는 방법을 찾는다

2월 26일 엔비디아가 4Q 실적 발표를 했다. 이렇게 큰 회사가 아직도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면서 AI 시장을 장악하는 동시에 스스로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때 나는 출장 중이었는데, 호텔에서 CNBC의 실적 발표 후 젠승황과의 인터뷰를 봤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내용, 젠슨황의 자신감, AI가 가져올 큰 변화 등이 그대로 느껴지는 인터뷰 내용이었다.

젠슨은 일도 잘하고, 영어도 완전히 미국인처럼 유창하게 하고, 자기 관리도 철저해서 언론에 나오면 항상 보기도 좋고 듣기도 좋은 CEO라고 생각한다. 그와의 인터뷰는 항상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소프트웨어는 알아서 방법을 찾는다(software finds a way)”

대충 무슨 말인진 모두 다 알 것이다. 엔비디아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GPU 칩을 만드는 하드웨어 회사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엔비디아는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을 때, 일찍이 GPU를 만들기 시작했고, 남들보다 너무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지난 30년 동안 GPU 하드웨어에 대한 독보적인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했다. 실은, 이 하드웨어 경험만으로도 따라잡기 힘들 텐데, 여기에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실력도 그동안 연마할 수 있었다. 결국엔 하드웨어를 잘 구동 시켜서 같은 환경에서 더 높은 성능을 뽑기 위해선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는 걸 그동안 배웠기 때문에, 내가 여기저기서 듣기로는, 엔비디아의 높은 기업가치는 하드웨어보단 이런 소프트웨어 실력 덕분인 것 같다.

하드웨어는 한 번 만들면 고치기 힘들고, 그 구조 자체가 경직되어 있어서 유연성과는 거리가 멀다. 반면에, 소프트웨어는 추가 비용 없이 초기 버전을 얼마든지 수정하면서 비약적인 개선이 가능하다. 유연한 소프트웨어는 물과 같이 흐르면서, 물리적으로 제한된 하드웨어, 나라마다 다른 산업적 규제, 그리고 계속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기술을 진화시키고 최적화하면서 지금, 이 시점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제자리를 항상 찾아간다.

그런데, 젠슨의 이 말을 조금 더 깊게 들어가서 해석해 본다면, 아마도 이분은 항상 방법을 찾는 소프트웨어를 찬양한 게 아니라, 이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드는 엔지니어들을 찬양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리 투자사 창업가분들과 오랫동안 같이 일하다 보면, 항상 많은 걸 배우면서 느끼는데, 역시 가장 놀라운 건 이들의 생존력과 적응력이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아도, 이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고, 어떻게든 사업을 지속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서 찾는다. 내가 이런 분들을 보고 바퀴벌레 같다는 존경의 비유를 자주 하는데,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에 바퀴벌레를 가두어도 결국엔 방법을 찾아서 탈출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큰 위기에 봉착해서 더 이상 길이 안 보이는데, 우리의 창업가들은 무조건 방법을 찾는다.

이런 사람들이 만든 소프트웨어는 젠슨이 말 한대로, 불가능을 가능케 할 것이고,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 것이다. 나는 젠슨의 인터뷰를 보면서, 이분이 엔비디아의 뛰어난 소프트웨어를 칭찬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뛰어난 엔지니어들을 찬양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알아서 방법을 찾는 사람들은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매일 만나고 투자하는 창업가들이야말로 항상 알아서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다.

덜 약속하고; 더 해주어라

우린 어쩔 땐 하루에도 열 개가 넘는 회사 자료를 검토한다. 관심이 가는 사업은 조금 더 자세히 보고, 그렇지 않은 사업의 자료는 특별하게 관심을 갖고 보는 부분 – 예를 들면, 창업팀의 이력이나 매출과 같은 수치가 있는 페이지 – 외엔 빠르게 스캔하고 스크리닝하는 편이다. 모든 회사는 다르고, 모든 비즈니스는 다르므로, 자료의 내용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웬만한 자료는 공통으로 3년 또는 5년 치 매출 추정이 들어간 페이지가 한두 개 있다.

솔직히 우린 이 예상 매출 슬라이드는 잘 안 본다. 어떤 대표들은 이 슬라이드의 숫자를 만들기 위해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예측치를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서 상당히 복잡한 엑셀을 돌리거나, 아주 무거운 number crunching을 한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땐, 초기 스타트업의 미래의 매출 수치는 거의 90% 정도 디스카운트 하거나, 아예 무시해도 된다. 솔직히 다음 달에 없어질지도 모르는 사업인데 3년 후의 매출을 예측하는 것 자체가 억지이고, 아무리 정교하게 모델링을 해도 대부분의 수치는 목표와 말도 안 되게 크게 어긋난다. 그리고 대부분 첫 2년은 큰 성장이 없고 손실이 많이 발생하다가 갑자기 3년 차부터 매출이 20배씩 뛰면서 흑자가 발생하는 그림을 보여주는데, 솔직히 대표들도 이런 그림을 투자자들에게 보여주면서 본인들은 속으로 민망한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이게 시간 낭비인가? 꼭 그런 건 아니다. 아직 1,000만 원의 매출도 못 하는 회사가 3년 후의 매출을 예측하는 건 실용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성을 들여 숫자를 시뮬레이션해 봤다는 건, 대표가 회사의 전략, 비즈니스모델, 고객 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다는 의미라서 이 사실 자체는 투자자들에게 어느 정도 신뢰를 주긴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그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서 계산해 본 숫자를 투자자들이 믿는가에 대해선 나는 매우 부정적이다. 나도 투자자지만, 3개년 프로젝션 등의 수치가 보이는 슬라이드를 아예 무시하고 넘어가 버리는 편이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미래의 목표 매출을 투자자들에게 제시할 때, 이 목표가 투자금이 있어야지 달성 가능한지, 아니면 투자금 없이 현재 자원만으로도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펀딩을 돌 때, 그 투자금을 받았을 때 달성 가능한 목표를 자료에 기재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작년 매출이 1억이었는데, 올해는 30억을 하겠다는 약간 비현실적인 추정치를 제시하는 대표들과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면, 현재 펀딩하고 있는 10억 원의 투자를 받으면 사람도 채용하고, 마케팅도 하고, 영업도 더 하고 해서 목표 30억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말이다.

이분들에게 그럼 이번에 10억 원보다 적은 5억 원만 투자받거나, 아니면 아예 투자를 못 받으면 매출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생각해 봤다면 훨씬 낮은 수치를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 같은 투자자들은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목표 매출의 절반도 못 하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때부턴 이 창업가와 회사를 약간의 의심과 디스카운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가 모든 VC를 대변해서 말할 순 없지만, 회사 자료에 3년~5년 매출 추정치를 넣으려면, 기본적으로 외부 투자 없이 현재의 인력과 돈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치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산정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또는, 아주 명확하게, 얼마의 투자를 받으면 달성할 수 있는 공격적인 수치와 투자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수치를 확실히 구분해 주면 좋겠다. 투자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수치를 보면 너무 초라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투자를 못 받을 것이고, 투자 없이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매출을 계산했는데, 이게 너무 초라해 보인다면, 그냥 우린 현재로서는 외부 투자에 의존하는, 형편없고 초라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VC도 그렇게 바보는 아니라서, 뭘 어떻게 표시하더라도 결국엔 이런 현실을 잘 파악할 것이다.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여러 번 강조했듯이, 올해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투자를 못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현재 우리가 가진 돈, 인력, 캐파를 150% 돌렸을 때 달성 가능한, 지극히 현실적인 목표를 투자자들에게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화하는 게 서로에게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다. 투자를 받았을 때 달성할 수 있는 공격적인 목표도 솔직히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회사에 돈이 들어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회사들은 대규모 투자를 받은 후에 매출이 역성장하는 경우도 많고, 이미 내가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회사 상황이 안 좋아서 대규모 감원을 한 회사는 오히려 매출이 두 배 성장한 경우도 있다.

우리 투자사에 내가 항상 조언하는 건, 투자자들에게 약속하는 목표는 되도록 보수적으로 산정하고, 이 보수적인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사업을 잘하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underpromise; overdeliver들의 대가들이다. 왜 이런 사람들이 잘할까? 이 세상은 허세와 뻥카로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더 강해 보이고, 어려운 상황을 얼렁뚱땅 넘어가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이 overpromise 하는데, 결국 이들은 모두 다 underdeliver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이들의 신뢰는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만 더. 책 읽고 책 내용을 그대로 따라 하기 좋아하는 대표들이 사랑하는 전사 OKR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전사 목표를 정할 땐, 최소 90%는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해야 하는데, 내가 아는 너무 많은 회사들이 1년 내내 60% 도 달성 못 하는 비현실적으로 빡센 목표를 설정한다. 이렇게 overpromise; underdeliver 하려면 뭐 하러 전사 워크숍을 가고, 바쁜 임원들의 시간을 낭비하는가?

덜 약속하고, 더 해주어라. 사업이든, 인생이든, 우정이든, 연애든.

등잔 밑은 항상 어둡다

(이 블로그에 쓰는 글은 당연히 다른 사람이 다 읽을 수 있지만, 이 글은 남보단 내 스스로의 반성, 배움, 그리고 성장을 위해서 쓴다.)

우리가 2018년도에 투자한 Norae라는 미국 스타트업이 있다. Ryan이라는, 한국 분은 아니지만,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좋아하는 창업가가 시작한 회사다. 회사 이름 Norae(노래) 자체가 이 팀이 얼마나 케이팝을 좋아하는지 그대로 보여주는데, 첫 번째 비즈니스는 틱톡의 모태가 된 Musical.ly랑 동일했다. 립싱크하는 동영상과 커버댄스 동영상을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였는데, 여기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콘텐츠가 케이팝이었다.

콘셉트는 재미있었지만, 사업 자체는 썩 잘되지 않았다. 아니, 잘 안된 게 아니라 진짜 별로였다. 똑똑한 창업가들이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워낙 작은 회사라서 돈도 없었고, 나도 뮤직쉐이크를 통해서 배웠지만, 음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소셜 미디어가 돈을 제대로 벌 수 있는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건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작은 투자금은 다 썼고, 팀원은 대부분 떠났고, 그러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스타트업 폐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물론, 이 창업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공동 창업가와 방법을 찾아서 계속 서버비를 벌고 앱 자체는 운영이 되게 정말 열심히 허슬했다. 중간에 한 명씩 차례로 다른 회사 업무를 해주면서 외주비도 벌고, 하여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동원해서 바퀴벌레같이 살아남았다.

그런데 틱톡이 너무 커지자, Norae의 가능성은 점점 더 없어졌고, 아마도 이 시점에 다다르면 대부분 창업가들이 그냥 회사 문을 닫을 텐데, 이 회사의 코파운더들은 피봇을 시도했고, Coverstar라는 어린이들을 위한 안전한 TikTok과 유사한 앱을 만들어서 출시했다.

미국 회사라서 한국 창업가만큼 자주 연락하거나 만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정기적으로 계속 이야기하고, 상의할 게 있으면 조언도 하면서 이 팀의 변화를 나는 계속 지켜봤다. 내가 항상 바퀴벌레같이 절대로 죽지 말고 살아남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맘속에서는 그냥 회사 문 닫는 게 모두를 위해서 맘 편할 텐데 또 안 될 앱을 새로 만드는 게 안쓰럽기도 했다.

어쨌든 이렇게 꾸역꾸역 조금씩 진도를 나아갔고, 우리가 첫 기관 투자자이기도 하지만, 초반부터 창업가의 허슬과 노가다를 가까이서 봤기 때문에, 사업 관련 모든 내용을 지속적으로 투명하게 공유해줬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우리에게 추가 투자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개인적으로 친한 주관적인 감정과 느낌을 배제하고 냉철하게 이 사업, 제품, 팀을 – 팀이라고 해봤자, 코파운더 두 명밖에 안 남았다 –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판단하면 잘 될 가능성이 너무 낮은 사업이라고 판단해서 이 회사에 스트롱이 단독으로 추가 후속 투자하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매번 내렸다. 여러 번 검토했지만, 매번 우리 팀에서는 pass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최근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a16z에서 이 회사에 투자한 것이다. 그것도 단독으로. 이 투자자에게 피칭했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실제로 텀싯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내가 들었을 때, 즉시 내 머릿속에 “왜 우린 투자하지 않았지?” , “우리만 뭔가 못 봤던 건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크고 유명한 VC에게 투자받는다고 해서 사업이 잘되는 건 아니고, a16z가 잘 못 판단한 투자도 수두룩하게 많다. 그래도 이렇게 크고 경험이 많은 VC가, 우리가 수년 동안 잘 알고 있었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매번 투자하지 않은 우리 포트폴리오사에 후속 투자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기쁘기도 했지만, 뭔가 아쉽고 허전했다. 우리가 만약에 이전에 이 회사에 추가 투자했다면, 훨씬 더 싸고 좋은 조건에 투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약간 배가 아프기도 했다.

전형적으로 등잔 밑이 어두웠던 케이스였다.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제일 친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포트폴리오사를 실은 우리가 제일 잘 몰랐던 것이다. 아니, 몰랐던 건 아니고, 오히려 너무 잘 알고, 너무 오랫동안 본 팀이고, 이 팀이 그동안 어떤 고생을 했는지 샅샅이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어쩌면 우린 그 뒤에 숨은 장기적인 가능성을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크고 유명한 VC에서 투자했다고 그 회사가 장기적인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난 스스로 이번 계기를 통해서 여러 가지 역발상적인 생각과 반성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지난 13년 동안 투자했던 모든 포트폴리오사를 다시 한번 검토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팀 전원이 좋은 창업가와 회사를 남보다 먼저 찾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어쩌면 스트롱 포트폴리오에 이런 분들이 있는데 등잔 밑이 어두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너무 가까이 있어서 너무 친하고, 너무 잘 알고, 너무 당연한 것들의 진가를 우린 못 알아볼 때가 있는 것 같다. 우리 투자사의 후속 투자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는데, 이는 투자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서 생각해서 봐야 하는 쉬워 보이지만 매우 어려운 숙제다.

세상은 노가다

몇 년 전에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됐던 요리 다큐멘터리 ‘길 위의 셰프들’을 이제서야 난 봤다. 한국 편에서는 광장시장도 소개되고 칼국수와 빈대떡 같은 한국 요리도 하이라이트 돼서 한국에서도 꽤 인기가 많았던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다.

태국 편에서 태국 길거리 음식의 여왕이라는 쩨파이라는 분이 소개됐다. 방콕의 ‘란쩨파이(=쩨파이네 식당)’ 식당의 오너셰프인데 길거리 식당 치곤 드물게 미쉐린 1스타를 받은 식당이라서 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당이다. 항상 손님들이 줄 서 있고, 블랙핑크의 리사를 비롯한 웬만한 유명 인사가 방콕을 방문하면 꼭 들리는 필수 명소다. 이 식당은 원래 현지에서는 유명했지만, 2017년도에 미쉐린 별을 받으면서 란쩨파이는 세계적인 식당의 반열에 올라갔고, 쩨파이는 유명 인사가 됐다.

쩨파이씨와의 인터뷰를 보면 미쉐린 1스타를 받은 2017년도가 그녀의 인생이 완전히 바뀐 한 해(=transformational year) 였다고 한다. 그전에는 그냥 평범한 태국 요리를 재미있는 방식으로 요리하는 길거리 요리사였는데, 2017년 이후에 그녀는 평범한 태국 요리를 그녀만의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석해서 재탄생시키는 글로벌 셰프가 됐고, 이후에 전 세계에서 방콕을 방문한 김에 란쩨파이에 오는 손님들에서 란쩨파이에서 먹기 위해서 방콕을 방문하는 손님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쩨파이씨는 전 세계 요리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한 번도 정식으로 요리 훈련을 받거나 요리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한 적이 없이, 그냥 어릴 적부터 요리를 어깨 넘어 따라 하면서 배운 사람이 미쉐린 별을 받는 경우가 그렇게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요리사들이 그녀를 부러워하고, 어떤 분들은 시기하기도 한다. 어쩌다가 반짝 떴고, 운 좋게 개천에서 용이 탄생했다고 이들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쩨파이씨는 1970년 말에 요리에 입문했고, 단 한 순간도 요리를 멈춘 적이 없다. 그녀는 매일, 매시간, 새로운 방식의 요리에 대해서 연구했고, 새로운 재료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녀는 미쉐린 별을 받은 2017년도가 인생을 바꾼 한 해였다고 하지만, 실은 그 1년 뒤엔 남들이 모르는 40년의 노력이 있었다. 40년 동안의 끊임없는 노가다, 즉 끊임없는 육체적 노동이 단련되고 쌓이면서 그녀의 인생을 바꾼 2017년도에 폭발한 것이다. 인생을 완전히 바꾼 이 일 년이 만들어지기까진 수십 년의 노력, 근면, 성실, 그리고 노가다가 있었다는 점을 많은 분들이 무시하거나 간과한다.

우리 같은 VC는 주로 기술에 투자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해야 하는 노가다를 경시한다. 우린 항상 자동화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빠른 스케일을 신격화한다. 우린 모든 걸 건너뛰고 미친 듯이 성장하는 제이 커브를 꿈꾸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맨날 이런 이야기만 하니까 이들에게 투자받기 위해서 창업가들도 무리하게 제이 커브로 성장하는 방향으로 모든 자원을 집중하고,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사업과 벼락 성공을 항상 꿈꾼다.

그런데, you know what? 이렇게 단시간 안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건 이 세상에 없다. 우리 주위의 어떤 사업들은 하룻밤 만에 대박 난 것 같지만, 제대로 된 사업이라면, 그 대박 나는 하룻밤 뒤엔 성공과는 굉장히 먼 피와 땀으로 얼룩진 수천 ~ 수만 밤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엔 모든 성공은 아주 오랫동안의 – 어떤 경우엔 수십 년의 – 노가다로 만든 탄탄한 기초가 있을 것이다. AI의 세상이 오면서 모든 게 더 빨리 변할 것이고, 모든 게 더 빨리 자동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AI가 세상을 지배해도, 그 밑엔 더 큰 노력, 근면, 성실, 그리고 노가다가 반드시 필요하다.

육체적 노동과 단순한 반복 작업을 무시하면 안 된다. 결국, 모든 성공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면, 그 폭발적인 성공의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 수년, 또는 수십 년의 노가다가 반복됐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벼락부자와 벼락 성공을 바라지 말고, 지금부터 작은 노가다를 시작해 봐라.

Things take time. They just do. There is no shortcut.

채용하지 말아라

내가 만약에 투자자에서 다시 창업가로 돌아간다면, 해보고 싶은 게 정말 많지만, 안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중 정말 하고 싶지 않은 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가능하면 투자를 받지 않고, 둘은 웬만하면 사람을 뽑지 않고 싶다. 본인은 열심히 투자하면서, 창업하면 투자를 안 받겠다는 말은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VC가 싫다는 말이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의 자본 없이 내가 스스로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어서 첫날부터 매출을 만들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고, 아무리 좋은 VC라도 투자를 받으면 사업에 간섭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내가 만들고, 남의 돈 안 받고, 정말로 그동안 내가 보고, 느끼고, 실수한 배움을 그 누구의 간섭 없이 모두 다 사업에 적용해 보고 싶다. 이런 의미에서 웬만하면 외부 투자를 받지 않겠다는 말이다.

채용에 대해서도, 내가 그동안 280개 넘는 회사에 투자하면서 옆에서 간접적으로 배운 점이 정말 많은데, 그 중 딱 하나의 배움을 뽑자면, 가급적이면 채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시작할 땐 소수 인원으로 모든 걸 한다. 영어의 do more with less 정신으로 서로의 계급이나 직책 따지지 않고, 그냥 그때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일을 처리한다. 개발자가 화난 고객의 전화를 받아서 고객 서비스를 할 때도 있고, 영업 사원이 포토샵을 배워가면서 웹사이트 디자인을 할 때도 있다. 이 시기에 대표이사는 회사의 모든 잡일을 한다. 그리고 전원 모두 정말 열심히 일한다. 내가 아는 잘 되는 회사의 초기 멤버들은 창업 초기엔 일주일에 거의 100시간씩 일 했다. 이 단계에서는 사람을 더 채용하는 게 오히려 회사에 부담을 안기는데, 돈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더 채용한다는 건 회사에 큰 재무적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새로 채용한 사람에게 업무를 가르칠 시간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 인력이 일을 더 많이 하는 게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에 어떤 회사는 투자를 받고, 어떤 회사는 매출을 만들면서 스스로 돈을 버는데,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가장 먼저 사람을 채용한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라, 대규모 채용을 하는데, 이때부터 회사는 망가지기 시작한다. 특히, 정말로 필요해서 사람을 채용하는 전략이 아닌, 일단 사람을 채용하고 이 사람에게 업무를 할당하는 전략을 실행하는 회사는 생산성에 적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일단, 현금이 상당히 빠르게 소진된다. 스타트업 운영비의 상당 부분이 인건비인데 사람을 많이 채용할수록 비용 구조가 악화된다. 그리고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채용하다 보니까, 제대로 된 채용을 못 한다. 70% 정도만 맘에 들면, 그냥 나머지 30%는 회사에서 채워준다는 생각으로 채용한다. 결과는, 나머지 30%를 채워주기 위해서 돈은 더 많이 써야 하고, 이 30% 채우기에 동원되는 다른 사람들의 업무가 지장 받으면서, 여기서 생산성 손실이 발생한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채용하다 보면, 결국엔 회사에서 노는 사람들이 생긴다. 한국의 경우, 사람을 마음대로 해고하지도 못해서, 노는 사람들이 회사의 시스템 뒤에 숨어서 일하는 척하기 시작하면 정말 골치 아프다.

이렇게 갑자기 커진 회사들이 문제가 발생해서, 사람을 대량 해고하면, 신기하게도 매출은 오히려 더 증가하고 비용은 내려가는데, 이런 경험을 해본 창업가들은 이제 되도록 사람을 안 뽑으려 한다.

스타트업의 첫 번째 채용 전략은 “웬만하면 채용하지 말아라.”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100% 맘에 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채용하면 안 된다. 조금 부족하지만, 그 부족한 부분은 회사가 채워주면 된다는 생각은 직원의 절반 이상이 놀아도 시스템으로 잘 굴러가는 대기업에만 해당한다. 100% 맘에 드는 사람을 못 찾으면, 그냥 현재 임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힘들겠지만, 이렇게 하면 오히려 생산성이 더 올라가고, 실적이 훨씬 더 잘 나온다. 이건 내가 수년 동안 커지는 회사들을 옆에서 보고 배운 점이다.

그래서, 일단 가급적이면 채용하지 말아라. 임직원들이 모두 200% 캐파로 일해서 더 이상 더 많은 일을 못 한다면, 그리고 100%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으면, 그때 한 명씩, 아주 천천히 채용해라. 그리고 정말 개 같이 일 할 수 있는 사람만 뽑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