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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사이드잡, 그리고 떨

최근에 미국에 2주 넘게 출장을 갔었다. 한국은 이제 대부분의 직장이 재택근무를 끝냈거나, 그 빈도를 줄이고 있는데 미국은 아직도 많은/대부분 회사가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었다. WFH(Work From Home)가 이젠 복지가 아니라 아예 하나의 문화와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고 채용 공고를 보면 “3-2” , “4-1”과 같은 문구를 흔히 볼 수 있는데, 3일 출근-2일 재택, 4일 출근-하루 재택, 뭐 대략 이런 의미이다.

스트롱도 팬데믹 기간에는 재택근무를 했고, 이땐 어쩔 수 없이 WFH의 기본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재택근무를 옵션으로 하고 출근을 기본으로 바꿨다. 이젠 기본적으로 모두 다 출근하고, 상황에 따라서 재택근무 하는 체제로 돌아왔는데, 생산성이나 집중력 면에서 훨씬 좋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건 그 어떠한 데이터를 참고한 적도 없는, 100% 내 개인적인 의견인데, 재택근무를 회사의 기본방침으로 바꾸면서 미국 회사들의 생산성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엔 미국 전체의 생산성 문제로 확산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미국 출장에서 나는 6개의 도시를 방문하면서 많은 회사를 만났고, 서부/중부/동부 직장인들의 업무 패턴을 살짝 볼 수 있는 경험을 했는데, 지역, 나이, 직군에 상관없이 공통으로 발견한 요소는 ‘사이드잡’이다.

모든 미국의 직장인들이 본인들이 월급을 받는 풀타임 직업 외에 사이드잡 한두 개는 기본적으로 하는 것 같았다. 이건 고액연봉자들도 마찬가지다. 돈은 풀타임 직장에서 벌고, 평소에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한두 개씩 몰래 하고 있는데, 이걸 가능케 하는 게 재택근무이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서, 꼭 해야 해서 사이드잡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거라는 말을 하는데, 이런 태도는 많은 걸 말해주고, 이런 직원들이 있는 회사의 장래는 그렇게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일하므로 언제든지 그 누구의 간섭이나 방해도 없이 사이드잡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은, 이 분야에서도 좋은 스타트업들이 나오고 있는데, 한국이나 미국에서도 직장인들을 위한 사이드잡/긱플랫폼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쉬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회사에 나오면 전반적인 분위기와 peer pressure가 있어서 적당한 선에서 휴식을 취하지만, 집에서 혼자 일하면 마음대로 놀고, 쉴 수가 있다. 여기에 이번에 내가 또 목격했던 건, 빠르게 합법화되는 마리화나인데, 상당히 많은 직장인들이 집에서 마리화나를 피는 걸 봤다. 중독성이 담배보단 약하다곤 하지만, 마리화나를 핀 후에, 이 정신으로 다시 바로 업무로 돌아가서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너무 많은 직장인들의 농땡이, 사이드잡, 그리고 레크리에이셔널 마리화나는 미국 기업들의 생산성을 떨어뜨릴 것인고, 내가 이야기했던 어떤 CEO들은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재택근무 옵션이 없으면 요새 젊은 친구들 채용하는 게 너무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옵션을 제공해야 하고, 이제 재택근무는 옵션이 아니라 영구적인 고용 형태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미국 대표들이 매우 많았다. 이분들 중 일부는 오히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와 같이 tech를 이끄는 대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완전히 없애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이 말이 anti-근로자 발언일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한국같이 일찌감치 재택근무를 없앤 국가들이 생산성의 경주에서 이번 기회에 미국을 뛰어넘길 바란다.

모르는 걸 모르는 것

코로나 기간 우린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로봇을 만들고 있는 Roboligent라는 한인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서비스 자동화 분야의 로봇을 만들고 있는 회사인데, 이 회사의 창업가인 김봉수 대표님은 모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직접 100% 다 만들고 있는, 이 분야의 전문가이다. 투자하고 한 번도 직접 만나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 전에 오스틴에 가서 로보리젠트 팀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이 회사의 첫 번째 로봇인 Optimo Regen을 – 재활 치료를 돕는 로봇 – 줌과 동영상으로만 봤는데, 내가 직접 휠체어에 앉아서 로봇의 도움으로 모의 재활 치료를 해보니까 이 팀이 얼마나 적은 인력과 자본으로 얼마나 대단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로봇 스타트업은 다른 회사의 로봇 팔을 구매해서 비즈니스를 하는데, 이 팀은 모든 걸 직접 다 만들었다.

돈이 별로 없는 스타트업이라서, 창고형 사무실에서 직접 부품을 3D 프린터로 출력해서 조립하는데, 마치 영화 아이언맨에서 토니 스타크가 직접 로봇을 만드는 작업실 같은 분위기가 나서 로봇 공장을 견학하는 어린이같이 들뜬 마음으로 미팅을 했다.

김봉수 대표님은 UT 오스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바로 이 회사를 창업했는데, 본인도 이 로봇을 만들 수 있을지 잘 몰랐다고 한다. 그냥 계속 만들다 보니 아주 훌륭한 제품이 만들어졌는데, 나같이 공학은 공부했지만, 직접 한 번도 뭔가를 만들어 보지도 않았고,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봤을 땐, 너무나 대단한 창업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 중 최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대규모 시장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이 꽤 많이 있는데, 이 회사들의 창업가들도 Roboligent의 김봉수 대표님과 비슷한 말을 하는 걸 많이 들었다. 만들 수 있을 것 같긴 했는데, 진짜로 만들 수 있을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시작했더니 진짜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그리고 이분들과 더 깊게 이야기를 해보고, 이런 이야기를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내가 개인적으로 발견한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 창업가들은 본인들이 잘 모른다는 걸 몰랐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이는 걸 시도했고, 벽에 부딪혔을 때도 이게 벽인지 모르고, 계속 새로운 방법을 찾다 보니 해결책을 찾게 됐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모르는 걸 아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런 걸 주제 파악이라고 하고, 나도 이걸 엄청나게 강조하고 다닌다. 하지만, 가끔, 어떤 경우에는 모르는 걸 아예 모르는 게, 그 누구도 모르던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이런 걸 기적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요새 가끔 소규모의 기적들을 직접 목격하고 있고, 그럴 때마다 이 일에 대한 애정, 그리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다.

오늘도 본인이 모른다는 것을 잘 모르고,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작은 기적들을 만들고 있는 창업가분들 파이팅이다.

24시간 대기조

한국도 기업 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과거와 같이 8월에 전 국민이 휴가를 가진 않지만, 그래도 많은 직장인들이 이 기간에 휴가를 간다. 우린 작은 회사라서 특별히 휴가 기간이라는 게 없고, 그냥 쉬어야 할 때 쉬는 유연한 일정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모두 너무 바빠서 충분히 쉬진 못하지만, 되도록 쉬고 싶은 만큼 쉬라고 격려와 권장을 하고 있어서, 대부분 남들이 쉬는 바쁜 휴가철을 피해서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얼마 전에 스트롱 동료분과 이야기하면서 쉼과 휴가에 대한 주제가 나왔는데, 우리가 너무 많은 회사에 투자했고, 특히나 요새 다들 힘들어하니까 휴가를 가도 계속 이메일, 전화, 카톡, 슬랙을 확인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실은 휴가를 가면 완전히 스위치를 off 해야하는데,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이렇게 못 할 것이다. 대부분 스위치를 반 정도만 꺼놓고, 중간 중간에 계속 일을 하는 거로 알고 있고, 나 같은 경우에는 휴가를 가도 항상 스위치를 켜 놓고 있다. 나는 주로 매일 특정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 급한 일들을 먼저 처리한다.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하면,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가를 가서도 계속 일을 하고, 메신저는 항상 켜 놓는다.

어떻게 보면 회사의 대표이사로서 아주 나쁜 모범을 보이는 것이고, 남들은 나한테 병이라고 할 정도로 이런 루틴을 반복한다.

하지만, 투자하다 보면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Fred Wilson도 나랑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기업보단 사람에게 투자하고, 이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계속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사람은 항상 스위치가 on 되어 있고, 24시간 숨을 쉬기 때문에, 이들을 지원하는 우리도 24시간 같이 일을 해야 한다. 우리만 스위치를 완전히 off 할 수가 없다.

특히 요샌 사건, 사고가 많이 터지기 때문에 더욱더 긴장하고 우리가 투자한 사람들을 지원해야 하고, 우린 한국과 미국에 투자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스위치를 완전히 끌 수가 없는, 멈출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119 소방대원같이 실제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건 아니지만 – 하지만, 가끔은 정말로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죽이기도 한다 – 요샌 점점 더 VC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건 24시간 대기조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타트업은 24시간 돌아간다.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 이들에게 투자하고 지원하는 VC의 업 또한 24시간 돌아가야 한다. 멈추면 안 된다.

사람에 대한 타협은 없다

이 글에서 강조했듯이, 무에서 유를 만들고, 유에서 더 많은 유를 만드는 창업가의 필수 자질 중 하나는 유연함이다.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이 계획에 따라서 일을 진행하는 건 좋은 습관이고, 일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에서는 이런 계획에 따라서 일을 진행하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계획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예측이 빗나가는 상황에서 원계획에 집착하는 건 회사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모든 가설은 대부분 틀리기 때문에, 예측과 예상을 하기보단, 그냥 그때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서 타협해야 한다.

실은, 창업가들은 ‘타협’이라는 말을 정말 싫어한다. 전에 우리가 투자한 어떤 대표는 이 세상에서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타협이라고 했는데, 남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살지 않고, 본인이 만든 틀로 남을 인도하려고 창업한 분들이 왜 타협이라는 말을 증오하는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싫든 좋든 스타트업을 운영하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면서 일을 진행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창업가분들에게 세상 모든 것과 타협해도, 이거 하나는 절대로 타협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바로 ‘사람’이다. 모든 것에 대해서 유연해야 하고, 모든 것과 타협해도, 절대로 사람에 관해서는 타협하면 안 된다. 많은 경우에 우린 제품, 수치, 시장 등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이 모든 걸 실제로 만들고 가능케 하는 사람을 과소평가하는데 실은 모든 걸 이 반대로 봐야 한다. 사람을 가장 과대평가해야 한다.

사람 채용하는 게 너무 힘드니까, 어느 정도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나머지는 회사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꿀 수 있다는 논리로 채용을 진행하는데, 특히 초기 스타트업엔 이게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이라면 조금 부족한 부분을 회사의 시스템이 채워주는 방법이 잘 작동하지만, 초기 스타트업은 초기 팀이 회사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므로, 오히려 이 반대이다. 회사의 부족한 부분을 사람들이 채워줘야 하고, 이렇게 해서 회사의 시스템이 만들어져야지만 나중에 회사가 사람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투자사 대표들에게 나는 100% 맘에 들지 않으면 되도록 채용하지 말라고 한다. 사람에 대해서는 타협하면 안 된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같이 일을 좀 해보니까, 이 사람이 좀 아니다 싶으면 그 느낌이 주로 맞다. 조금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런 분들이 회사에 더 오래 있을수록 팀워크는 더 망가진다. 이런 분들은 바로 내보내는 게 맞다. 약간 다른 의미지만, 이 경우에도 사람에 대해선 타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 할 때 타협은 주로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사람에 대한 타협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

포기해도 괜찮아

바로 이전의 포스팅을 읽고 몇 분들이 코멘트와 문의를 개인적으로 주셨다. 너무 공감하면서 읽었고, 창업가들에 대한 스트롱의 태도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의지는 참 따뜻하고 고맙긴 한데 솔직히, 사업하면서 그동안 너무 많이 자빠져서 이제 더 이상 일어날 힘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나에게 조언을 구한 분들도 있다.

좀 의외일 수도 있는데, 이분들에게 나는 그냥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너무 심하게 넘어져서, 또는 너무 지쳐서 그냥 누워 있고 싶다면, 나는 이분들에겐 그냥 누워있으라고 한다. 사업이 뭐라고,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소중한 내 자신을 갈아 넣으면서, 육체와 정신이 망가질 때까지 스스로를 학대하는 건 우리도 바라지 않는다.

오롯이 투자자의 입장에서 말해 본다면, 우리도 힘들게 앵벌이 한 남의 돈을 창업가들에게 투자한다.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돈이다. 그리고 아주 냉정한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힘들어도 계속하라고 강요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돈과 사업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들도 많다. 사업보단 가족이 더 중요하고, 친구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가족과 친구보다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열심히 일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해칠 정도로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 이 정도의 상황까지 왔다면, 포기하는 것도 괜찮다.

포기. 이 말을 우린 정말 싫어한다. 특히, 창업가들에겐 사망 선고와도 같은 말이고, 지금까지 인생을 걸었던 단 한 가지에서 영원히 손을 떼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많은 창업가들에게 이 사업은 딸이나 아들을 낳기 전에 낳았던 첫 번째 자식이기도 하다. 그만큼 소중하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렇다고 사업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필요는 없다. 목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이 우리 인생에는 많기 때문이다. 이까짓게 뭐라고.

너무 힘들어서 다시 못 일어날 것 같으면 그냥 푹 쉬어도 괜찮다. 포기해도 괜찮다. 포기한다고 실패자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평생 자빠져 있지 않길 바란다. 충분히 쉬고, 언젠간 다시 일어나고 싶으면, 그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일어나고, 다시 한번 도전해 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