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누구를 위한 법이고,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

우리가 투자한 회사 중 콘택트렌즈 사업을 하는 옵틱라이프라는 곳이 있다. 이 회사는 본인들이 직접 콘택트렌즈를 제조하고, 다른 회사의 제품 또한 유통하고 있는데, 한국은 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옵틱라이프에서 고객이 원하는 렌즈에 대한 결제를 하고, 실제 픽업은 전국 가맹점 중 하나에서 한다. 가맹 안경점은 특별한 회비나 수수료는 내지 않고, 옵틱라이프가 구매 건당 이들에게 수수료를 지급한다.

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가 불법인 이유는 렌즈가 각막에 직접 접촉하는 의료기기로 분류되어서, 잘 못 사용 시 시력 저하나 감염 등의 위험이 있으므로 대면 판매를 통해 사용법 안내와 건강 상태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규제의 취지는 잘 이해하지만, 국민 건강을 너무 과하게 강조하는 반면, 소비자의 편의성과 선택권은 너무 과하게 무시한다는 점에서는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이 법은 국민들의 건강보단, 대한안경사협회라는 특정 단체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안경사협회 회원 5만여 명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내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어쨌든, 이런 법이 있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더 좋고, 더 다양하고, 더 저렴한 콘택트렌즈를 중간상인 없이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려고 하는 스타트업들은 위에서 설명했던, 가맹점에서 렌즈를 픽업하는 복잡한 사업을 하고 있다. 실은, 이 모델을 좋아하는 안경사들도 상당히 많다. 안 그래도 오프라인 안경사의 트래픽과 매출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데, 픽업 서비스를 통해서 수수료 매출이 발생하기도 하고, 렌즈를 픽업하기 위해서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안경이나 다른 제품들을 구매할 확률이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추가 매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모델은 서로에게 유익한, 상생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안경사협회가 렌즈 픽업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 몇 곳을 의료기사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여기에다 안경사협회 회원사 중 픽업 네트워크에 가맹한 안경원에 내용증명도 보내고, 계속 이 네트워크에 가입해 있으면 안경사 면허정지까지 실시하기로 했다고 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안경사협회는 국민 눈 건강을 위한 특단의 조치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이들은 국민 눈 건강 걱정은 별로 안 한다. 그런 사람들이 안경원을 방문할 때마다 더 저렴하고 좋은 제품도 있는데, 무조건 비싼 제품을 불투명한 가격에 판매할 리가 없다. 이들은 국민 눈 건강 때문이 아니라, 쿠팡이 이마트 같은 오프라인 유통업체를 무력화했듯이, 새파란 스타트업에 잠식돼 이들의 렌즈 보관함으로 전락하는 걸 훨씬 더 우려한다. 즉, 오랫동안 스스로 노력도 안 하고, 변화하지 않아도 아주 단단했던 철밥그릇을 빼앗길까 봐 이런 싸움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옵틱라이프와 같은 스타트업이 아니라. 바로 콘택트렌즈가 필요한 국민들이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선택하고, 안경원에서 픽업한 렌즈를 착용해서 각막이 손실되거나 눈 건강을 잃었다는 소비자는 거의 없는 것 같은데, 국민 눈 건강을 운운하면서 이런 서비스들을 다 막아버리면, 결국엔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안경원에서 한정된 종류의 제품을 훨씬 더 비싼 가격에 구매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이건 안경사협회가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데, 이런 건 이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전에 타다에 대한 글을 내가 꽤 많이 썼는데, 그때와 비슷한 생각이 든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고,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잘 모르겠다. 이 산업을 자세히 보면, 한국에서 온라인 안경/콘택트렌즈 유니콘이 아직 안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규제 때문인 것 같은데, 이들도 세월의 흐름을 평생 막을 순 없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이나 규제는 다수의 국민과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한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고, 결국 법이 바뀌면, 기존 안경사들은 많이 망할 것이다.

전 세계 그 어떤 나라에서도, 회사나 단체의 해자가 규제라면, 그리고 규제가 그 유일한 진입장벽이라면, 이런 조직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규제가 없어지는 그 순간에 단숨에 쓰러진다. 내가 이들이었다면, 소송에 시간과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그냥 자신의 체질 개선에 사활을 걸겠다. 왜냐하면, 소송에 이기든 지든 결국 세상은 바뀔 것이다.

일본의 1940년 체제. 한국은?

올해 내가 한국의 직장인 분들은 모두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글을 여러 번 썼다. 예상친 못했지만, 이 주제가 상당히 민감한 주제이고, 몇몇 포스팅에는 엄청나게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댓글 다신 어떤 분이 ‘1940년 체제’라는 책을 추천해서 꽤 흥미롭게 읽었고, 나도 이 책에서 뭔가 배우고 참고할 만한 점들이 있는 것 같아서 내 생각을 여기서 그냥 특별한 흐름이나 순서 없이 적어본다.

일단 이 책의 제목과 부제는 ‘1940년 체제 (일본 전후 경제사의 멍에를 해부하다)’ 이고 저자인 노구치 유키오는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분이라는 걸 주변 일본 친구들을 통해서 확인했다. 경제학자, 교수, 그리고 일본 재무성에서도 일했던 분인데, 반골 엘리트 기질이 상당히 강한 분이라서 이분을 열렬히 옹호하는 분들도 많지만, 죽도록 싫어하는 분들도 많다. 내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잘 몰라서 요목조목 따질 순 없지만,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한 때 최강국이었던 일본이 왜 요새 이렇게 힘을 못 쓰는지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분석이다. 이걸 꽤 재미있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일본이 1980년대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는데 – 나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지만, 당시에 미국보다 더 잘 살았고, 일본 대학교수가 미국 대학교수보다 연봉이 높았다고 한다 – 그 영광은 오래 못 갔고, 오히려 지금은 30년~40년을 잃어버린 “이미 끝난” 나라라는 비난을 받는데, 그 원인은 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1940년 체제 때문이라고 한다.

한 권의 두꺼운 책으로 설명되는 1940년 체제를 간략하게 요약하는 건 힘들지만, 이 체제는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만든 강력한 중앙집권화 체제이다. 이 시스템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제도가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며, 이 제도가 전후에도 그대로 이어지면서 궁극적으론 일본 경제의 침체로 이어졌다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도 많은 제도와 시스템을 일본으로부터 가져왔는데, 이 종신고용과 연공서열 제도는 그대로 한국으로 수입됐다. 그리고 이건 이 책을 보고 느낀 내 생각인데, 일본에서 그랬듯이, 한국에서도 초반에는 이 제도가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이뤘지만, 한국이 경제적 후발주자에서 선발주자가 된 이 시점에선, 더 이상 성장 동력을 제공하기보단, 오히려 침체의 원인이 되는 것 같다.

이런 제도가 그동안 몇 차례 변형되면서 만들어진 게 사람을 쉽게 해고할 수 없는 경직된 노동 시스템, 무능력한 직원도 자리에서 오래 버티면 자동으로 승진하는 시스템, 그리고 싫든 좋든 지켜야 하는 52시간 근무 제도이다. 이것도 모자라서, 어떤 분들은 주 4일제 근무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런 분들은 이 블로그 독자가 나에게 권장했듯이, 나도 이분들에게 1940년 체제를 꼭 읽어보라고 권장하고 싶다.

이제 한국은 강대국의 대열에 들어왔다. 자국이 잘 살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힘 있는 나라가 된 걸 누가 싫어하겠는가? 하지만, 이 유리한 위치를 우리가 오랫동안 지키고 싶다면, 나라의 성장에 방해되는 오래된 시스템은 빨리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국이 인당 GDP 5만 달러의 시대에 최대한 빨리 도달하고, 더 나아가서는 미국을 넘어 10만 달러의 초강국이 되길 정말 간절히 바란다.

개개인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국가만 뭔가를 해주길 기다리면 절대로 그날이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개 같이 노력하고, 개 같이 일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개 같이 노력하는 걸 막는 법과 제도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투자, 그리고 바로 해고

2021년도에도 투자받고, 또 최근에 투자받은 대표들은 두 시점에서의 전반적인 업계 분위기와 투자자들의 분위기가 180도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2021년도는 나의 짧은 VC 경력 중 가장 흥미로운? 한 해였고, 돈이 완전히 메마를 것 같았지만,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이 시장에 풀렸던 시기였다.

이때 투자 받은 창업가들은 대부분 회사의 실적이나 수치 대비 훨씬 더 높은 밸류에이션에 훨씬 더 많은 투자금을 받았고, 당시 투자자들 분위기는 투자금을 최대한 빨리 소진해서 더 높은 밸류에 또 투자받자는 게 지배적이었다. 회사가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로 건강한 매출을 만들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고, 최대한 많이 채용하고, 최대한 마케팅 많이 태우고, 최대한 직원들을 위한 복지에 돈을 많이 써서, 투자받은 돈을 최대한 빨리 쓰고, 내실보단 더 커진 외형으로 이전 가치보다 5배 이상의 밸류로 또 투자 받는데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당시에 신기했던 게, 좋은 창업가들이지만, 매출도 없고, 비즈니스 모델도 없는, 창업한 지 3개월밖에 안 되는 회사들이 기업 가치 200억 원 이상에 펀드레이징을 하고 있었고, 이들에게 투자하는 VC들이 정말 많았다는 점이다. 이 VC들에게 뭘 보고 이렇게 비싸게 투자했냐고 물어보면, “몇 달 뒤에 더 높은 가치에 투자받으면 되죠.”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가 만났던 이런 회사들은 대부분 지금은 문을 닫았거나, 아직 살아 있다면 당시에 투자받았던 200억 원 이상의 밸류보다 훨씬 낮은 50억 원대 밸류로 다운 라운드를 하고 있다. 많은 회사들이 비즈니스 자체도 피봇팅을 하기도 했다.

요샌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VC들은 검토하는 회사가 도대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최대한 빨리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기 위한 전략이 있는지, 그리고 기업가치가 합리적인지, 여러 가지를 매우 꼼꼼하게 챙긴다. 투자금의 용도가 더 많은 사람을 채용하고, 유료 마케팅을 하는 거라면, 3년 전만 해도 이 전략에 손뼉 치던 투자자들은 이제 회의적인 시각으로 이 전략을 바라본다. 그래서 2021년 도에도 투자받고, 최근에 또 투자를 받았던 대표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온탕에 있다가 갑자기 냉탕에 들어온 기분이고, 같은 투자자 지면 그동안 분위기와 투자 전략이 어쩜 이렇게 달라졌는지 상당히 놀란다.

우린 2021년도에도 열심히 투자했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미친 밸류에이션에 투자는 가급적 자제했다. 아무리 좋은 창업가들이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해도, 우리가 원하는 밸류가 아니면 웬만하면 안 들어갔다. 실은, 이렇게 하고도 그 회사가 계속 성장하고 투자도 잘 받으면, 우리가 실수했는가 후회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잘한 것 같다.

요새 우리가 신규 투자를 하거나, 기투자사들에 후속 투자를 할 때,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투자하면서 대표들에게 이번 라운드의 목적은 이 투자금을 안 쓰는 것이라고 한다. 회사를 운영하고 성장시키려면 당연히 돈을 써야 하지만, 그만큼 돈을 소중하게 쓰고, 최대한 회사를 lean 하게 운영하면서, 가능하면 이번 투자금으로 흑자를 만들어 보라는 경고이자 부탁이다.

둘째는, 투자받아서 사람을 더 채용하는 전략이 아닌, 완전히 그 반대 전략을 구사하라고 한다. 즉, 이번 투자를 받으면서, 회사에 기여를 못 하는 직원들을 대량 해고하라고 한다. 투자를 받는 회사들은 나름 잘하는 회사지만, 계속 그 기조를 유지하려면, 최대한 lean 하게 회사를 운영해야 하고, 이걸 가능케 하는 건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시스템이다. 내가 얼마 전에 채용에 대한 글을 썼는데,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채용하지 말고, 100% 기여를 못 하는 직원이 있다면, 과감하게 내보내라고 한다. AI도 좋아져서, 사람이 하는 low level 작업은 충분히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두 가지 경고이자 부탁이자 조언은 물론, 꼭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라, 최대한 회사를 lean 하게 운영하고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 포트폴리오 창업가분들뿐만 아니라, 모든 창업가가 명심해야 할 내용이다.
투자를 크게 받았다면? 그 돈을 최대한 쓰지 말아라. 최대한 채용하지 말고, 오히려 투자금이 납입된 그날 불필요한 인력을 해고해라.
투자를 적게 받았다면? 그 돈을 최대한 쓰지 말아라. 최대한 채용하지 말고, 오히려 투자금이 납입된 그날 불필요한 인력을 대량 해고해라.
투자를 못 받았다면? 돈을 더 아끼고, 사람 절대 채용하지 말고, 있는 적은 인력도 더 줄여라.

실제로 돈을 버는 사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로 온 것을 환영한다.

스토커와 같이 집착해라

공식 라이선스 스포츠용품을 판매하는 Fanatics라는 미국 회사가 있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인이라면 Fanatics 사이트 또는 이 회사가 운영하는 수많은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뭐라도 한 번은 사 봤을 것이다. 미국 모든 대학교의 공식 라이선스 제품을 판매하고 있고, NBA, NFL, MLB 등 프로 스포츠 공식 라이선스 제품도 다 판매하는, 기업가치 약 40조 원의 거대한 이커머스 회사이다.

나도 여기서 돈을 꽤 많이 썼는데, 운동용품과 굿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Fanatics.com에서 한 시간은 거뜬히 체류할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제품이 있고, 사이트도 잘 만들었다. 얼마 전에 이 회사의 창업가 마이클 루빈의 인터뷰를 들었는데, 다른 모든 창업가들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이분의 인터뷰도 너무 재미있게 들었다.

감명 깊게 들었던 건 이 창업가의 집착이었는데, 뭐를 하던지 고객과 제품에 대한 거의 스토킹 수준의 집착으로 남보다 더 빠른 학습 커브를 만든 내용이 머릿속에 남는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시장에 어떤 신발을 판매하면 가장 인기 있고, 가장 많이 팔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밖에서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이 뭘 신고 다니는지, 그리고 어떤 신발을 신는지 관찰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신발만 보니 시장에 대한 감이 생기고, 어떤 발/다리 모양이 어떤 신발을 많이 착용하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이 짓을 수개월 동안 해서 목디스크가 생겼다는 웃픈 이야기를 했는데, 이 일화는 내가 평생 기억할 것 같다.

몇 달 전에 ‘고객에게 미친 사람들’이라는 글에서 이와 비슷하게 고객의 목소리에 집착하는 창업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솔직히 이런 창업가들이 점점 희귀해진다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한다. 요새 내가 만나는 창업가들은 과거 대비 학벌도 더 좋고, 영어도 더 잘하고, 개발도 더 잘하고, 펀딩도 더 잘해서 확실히 high quality 창업가들이긴 하지만, Fanatics 창업가와 같은 스토커 수준의 집착은 오히려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들다.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무서운 상대방과 불공평한 경기를 해야 한다. 이 우승 확률이 낮은 경기에서 그나마 확률을 높이기 위해선,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이 제품을 사업으로 키우기 위한 자금을 확보해야 하고, 이 사업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기기 위해 좋은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이 모든 걸 운동장의 반대편에 있는 상대방이 현재의 일등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걸렸던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압축해서 해야 한다. 결론은 매사에 열심히 해야 하고, 매사에 집착해야 한다. Fanatics 대표가 하루 종일 대가리를 땅에 처박고 사람들의 신발만 봤던 그 자세로 스토커같이 집착해야 한다.

우리 회사 임직원들은 우리가 만드는 제품에 대해서 이렇게 하루 종일 생각하는가? 우리 고객이 뭘 원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스토커와 같은 마인드로 집착하고 있나? 날이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고, 기울어진 운동장의 경사는 더 가팔라지는데, 스토커와 같은 마인드로 우리 제품, 고객, 직원, 성공에 집착하지 않으면 매번 지는 경기를 할 것이다.

언젠가는

2주 전 열렸던 2025년도 마스터스 골프 대회를 드디어 로리 맥길로이가 우승했다. 맥길로이가 2009년도를 시작으로 그동안 17번이나 마스터스에 참가했는데, 탑텐은 여러 번 했고 준우승도 한 번 했지만, 우승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6년 만에 거머쥔 우승 트로피였고, 그 누구보다 우승을 간절히 원했던 선수였기 때문에, 이번 우승은 나에게도 굉장히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우승 인터뷰에서 맥길로이가 이런 말을 했다. “과연 내가 이 대회를 우승할 수 있을지 의문하기 시작했다.(I started to wonder if my time would ever come)”. 그가 울먹이면서 이 말을 하는 그 순간, 바로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의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다.

맥길로이가 마스터스 대회에 첫 출전 했을 때의 나이가 18살이었다. 엄청난 거물 신인이었고, 그의 기세와 실력은 마스터스 대회를 한 10번은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출전부터 우승을 노렸지만, 우승하지 못했을 때 그의 심정은, “첫 출전이니까 괜찮아. 나는 젊고 앞으로 기회는 너무 많아. 내년엔 우승해야지.” 정도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다음 해에도 우승에 실패했다. 이번에도 “괜찮아. 난 아직 10대야. 내년에 이기면 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3년 차도 우승하지 못했고, 그다음에도 못 했고, 수년 동안 계속 우승에 실패했다. 어떤 해엔 우승에 가까이 갔지만, 반면에 형편없는 성적으로 마친 적도 많다. 그러면서 맥길로이도 20대가 됐고, 다시 30대가 됐다. 체력도 예전 같지가 않고, 민첩성과 시력도 떨어지면서 더 이상 “내년에 우승하면 돼.”라는 자신감보단, “내가 과연 우승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나는 맥길로이는 개인적으로 모르지만, 그가 지난 17년 동안 마스터스 대회에 대해서 느꼈던 이 감정의 변화는 아주 정확하게 이해한다. 나도 스트롱을 운영하면서 비슷한 과정을 겪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이 맥길로이가 거친 과정을 그대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스트롱 이야기를 해보자. 2012년도에 우린 1호 펀드를 만들었고, 2015년도에 2호 펀드를 만들었다. VC를 처음 시작할 땐, TechCrunch나 WSJ에서 읽는 것처럼, 우리도 좋은 회사에 투자해서 50배, 100배의 수익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순진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투자를 시작하고, 첫 2년이 지났을 땐 “이 회사들은 아직 시간이 걸려. 조금만 더 지나면 엑싯이 한두 개는 나올 거야.”라는 희망과 자신감이 아직 충만했다. 그런데 3년, 그리고 4년이 지나면서 이 희망이 서서히 의구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유니콘이 될 거로 생각했던 투자사들이 점점 더 싹수가 노래 보이면서, 과연 이 중 엑싯이 하나라도 나올지 스스로에게 의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의구심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조바심과 절망감으로 매우 빠르게 바뀌면서 “나는 과연 투자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나에게도 엑싯이라는게 생길까?”를 의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하는 투자가 맞다면 언젠가는 좋은 결실을 볼 것이라는 믿음을 억지로라도 스스로에게 주입하면서 계속 버텼고, 2017년도에 우리가 가장 먼저 투자했던 코빗이 좋은 엑싯을 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쌓인 의구심이 다시 자신감과 희망으로 바뀌었고, 이후 우린 계속 좋은 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맥길로이가 겪었던 그 똑같은 희망 -> 의심 -> 절망, 변화의 과정을 거쳤고, 이게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잘 이해하고 있다.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도 모두 다 이런 과정을 경험한다. 아마도 대부분 5년 정도 사업하면 좋은 엑싯을 하거나, 회사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창업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첫 1년은 개고생인데, 이때만 해도 체력도 있고, 희망도 있고, 자신감도 있어서 “한 2년만 더 하면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한다. 제품도 열심히 만들고, 펀딩도 열심히 하고, 좋은 사람도 열심히 채용한다. 하지만, 잘 안된다. 제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고객은 안 생기고, 수많은 투자자를 만나지만 그 누구도 돈은 안 주고, 아무도 우리 회사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희망과 자신감으로 몇 년을 더 버틴다. 딱 일 년만 더 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생각으로. 이 과정을 거치면서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회사는 안 망했지만, 창업 초기에 꿈꿨던 성장은 아직도 너무 멀리 있고, 이 10년 동안 창업가의 희망은 의구심으로 바뀌면서 “과연 내가 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매일 하게 된다. 이게 요새 내가 거의 매일 경험하는 상황이다.

맥길로이가 걸어온 길과 그 감정의 변화를 나는 잘 알기 때문에, 내가 그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그의 이번 마스터스 우승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는 또, “꿈이 있으면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다시 일어나서 도전해라. 계속 열심히 노력해라. 그러면 꿈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실은, 이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너무 뻔한 말이긴 하지만, 이 말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 말을 할 자격이 없지만, 맥길로이는 이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얻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창업가들이 나에게 자주 물어본다. “대표님, 저도 이 미친 짓 한지가 이제 8년째인데요, 제가 과연 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요?”
솔직히, 내가 대답하기에 굉장히 부담스럽고 어려운 질문이라서 나도 항상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럼에도 내 대답은 항상 “지금까지 안 망했으면 뭔가는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계속 도전하고, 계속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이다.

그 언젠가가 정말로 언제일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할 수 있다는 믿음조차 없다면 우린 이 험난하고 미친 여정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